728x90

 

내 고향은 두메산골이다. 겨울이면 산에서 나무를 해서 군불을 피우고, 몇 마지기 되지도 않은 논밭에 논농사와 밭농사를 해서 겨우 식구들의 입에 풀칠을 하며 살아가던 가난한 농촌에서 자란 촌동이었다. 겨울이면 쇠죽을 끓여 농사소를 키우고 봄이 되면 쇠풀을 뜯어 소를 먹이고, 여름이면 소를 산으로 들로 몰고가 소를 먹이던 그런 추억을 가진 시골 아이였다.

 

그런데 집과 학교의 거리가 멀어 국민학교를 아홉살에 들어가(그 때는 아홉살, 열살, 또 더 늦은 아이는 열 두 살에 입학한 아이도 종종 있었다), 공부를 시작했고, 머리는 보통의 아이들보다 조금 나았는지, 또 지는 것을 무척 싫어해서 공부도, 운동도 늘 선두였다. 당시만 해도 동네의 형과 동생들 대부분이 국민학교가 마지막 학력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중학교 진학이란 대부분의 아이들에게는 언감생심이었다. 그런데 마침 우리 면에 중학교가 새로이 신설되었고(나는 4회), 그리고 6년 내내 학교성적도 선두였으며, 학급 반장이든 회장이든, 또 전교부회장부터 회장까지 싹쓸이 하다보니, 가정방문을 한 선생님으로부터 아들이 착하고 공부도 잘한다는 얘기를 들으니 부모님 어깨도 으쓱해지고 자식 키우는 보람도 많이 느끼시는 것 같았다. 누님도 형님도 국민학교밖에 나오지 못했는데, 내가 집안에서 처음으로 중학교 진학을 하게 되었고, 그것도 신입생을 대표해서 입학식 송사(?)까지 하게 되었다. 중학교에서도 늘 학급 반장, 회장 자리를 놓치지 않았으며, 전교부회장, 전교회장도 내가 독차지했다. 아마 그러지 못한 친구들은 못마땅했을 수도 있고, 시기심도 없지는 않았을 터이다.

 

당시엔 고등학교도 입시가 있었다. 학교 옆 빈집을 얻어 동생과 자취생활을 하기도 했다. 나중에 중 3 때는 담임 선생님댁에 들어가 무료로 하숙도 한 적이 있다. 아버지께서는 학비도, 기숙사비도 무료인 금오공고에 진학하기를 바라셨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린 나이임에도 아버지의 요청을 거절하고 인문계에 진학하여 대학을 가겠다고 고집을 피웠고, 그렇게 해서 당시 서부경남의 명문이던 진주고등학교 입시에 응시를 했고, 합격해서 대학 진학까지 하기에 이른 것이다. 당시 우리 중학교는 남여공학으로 3개반(남 2개, 여 1개)이었는데, 당시 입시에서 진고 3명, 진주여고 3명이 합격하여 중학교 설립 이후 경사가 났었다. 그 때는 그랬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렀고, 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 진학까지 하게 되었으며, 석사과정은 행정법을 전공했는데, 박사과정에서는 행정법의 특별법 영역인 환경법으로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환경법을 전공해서 밥 먹고 살기가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이었다. 당시엔 국내 법과대학 커리큘럼에 환경법의 개설조차 없던 시기였다. 논문을 준비하면서도 무척 애로가 많았다. 자료도 궁핍하고, 연구하는 이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런데 학위논문을 준비하면서 보람이 컸다. 이건 분명히 머지않아 우리에게 닥칠 문제였고, 연구를 하면 늘 새로운 영역이었고, 실천적인 지식인이고자 했던 나의 성정에도 딱 맞는 학문 영역이었다. 당시엔 환경법 영역은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성정을 가진 이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연구하고 실천하기에 안성맞춤인 학문영역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박사학위논문을 받자마자 대학에 전임으로 발령을 받는 행운을 안게 되었다. 정년을 3년여 남겨놓은 지금까지 신나게 행복하게 연구하고 가르치며, 실천해오고 있다.

 

자연과 인간의 공생을 위한 생태주의 삶, 나는 나의 꿈을 이루었다. 그래서 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다는 삶을 살고 있다. 도시에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서 영위하고 있는 전원생활, 내가 평생 꿈 꾸던 삶이다. 쌀과 보리, 밀, 육고기와 생선을 제외하고는 자급자족의 삶이다. 환경문제는 점점 심각해져갈 것이고,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삶은 미래인류가 지향하는 모델이 될 것이다. 에너지도 원자력이나 화석연료가 아닌 풍력과 태양력을 이용한 대체에너지로 전환하고, 가능한 한 자급자족이 가능한 삶, 이게 바로 지속가능한 삶이 될 것이다. 해수면이 높아지는 걸 우려해 나는 저지대를 피해 오랜 자연마을의 산 아래에 집을 지어 살고 있다.

 

이런 삶은 힘듦도 없지 않다. 모기 등 풀벌레도 많고, 농사일은 많은 힘이 든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일정 정도의 수고는 감수해야 한다. 그게 삶이다.

728x90

'환경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상이 탄다  (18) 2023.08.03
산해정의 한여름 정원  (14) 2023.08.03
비가 너무 와도...  (10) 2023.07.18
끊임없이 내리는 비  (17) 2023.07.16
탄소 배출 규제로 압박 받는 기업들  (4) 2023.05.08
Posted by 산해정

250x250
블로그 이미지
산해정

공지사항

Yesterday
Today
Total

달력

 « |  » 2024.5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