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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는 축제 중

 

1223일부터 시작된 안나푸르나 트레킹은 촘롱, 밤부, 데우랄리, 그리고 최종 목적지였던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롯지까지 등정하는데 모두 45일이 꼬박 걸렸지만, 내려오는 길은 뱀부 롯지에서 1박을 하고 포카라까지 이틀밖에 걸리지 않았다. 올라갈 때는 오르막과 내리막길로 이루어진 가파른 돌계단길을 앞만 보고 걷다 보니 주위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나라와는 지질이나 생태계가 어떻게 다른지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 하지만 내려올 때는 몸과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인지 많은 것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포카라 숙소인 마운트 카일라쉬 리조트 (Mount Kailash Resort)

포카라 숙소인 마운트 카일라쉬 리조트(Mount Kailash Resort)

 

12월 28일 포카라 숙소인 마운트 카일라쉬 리조트(Mount Kailash Resort)에 도착한 시간은 어둠이 내릴 즈음이었다. 숙소에 도착할 무렵 경찰들이 길을 막고 차량을 통제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포카라는 축제(제25회 Pokhara Street Festival, 2023년 12월 28일부터 2024년 1월 1일까지) 중이었다. 운 좋게도 '가는 날이 장날'이 아니라, 오는 날이 축제일이었다. 트레킹을 하면서 숙식을 했던 롯지와는 달리, 쾌적한 호텔에서 더운 물로 마음껏 샤워도 할 수 있어 여독을 풀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게다가 바깥에서는 축제가 한창이어서 볼거리, 먹을거리조차 풍부하니 여행자로서는 축복의 시간이었다.

제25회 포카라 거리 축제

 

호텔 룸을 배정받아 여장을 푼 후 가이드와 포터를 포함해 우리 일행은 호텔 식당으로 모여 무사히 트레킹을 끝낸 기념으로 맥주와 소주로 건배를 하며 자축을 했다. 호텔 식사도 깔끔했다. 식사를 마치고 축제가 펼쳐지는 포카라 거리로 나섰다. 춤과 노래, 그리고 다양한 민속공연들이 펼쳐지는 포카라의 거리는 흥겨웠다. 춤과 노래에 흠뻑 젖어 신나게 축제를 즐기는 포카라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의 흥과 행복이란 국민소득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흥과 행복의 크기란 소득수준 순이 아니잖아요'라는 말은 분명 참의 명제일 것이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끝낸 일행들
포카라 시민들이 거리에서 춤을 추며 축제를 즐기고 있다.

 

한의사인 정흥식 원장님과 남편, 그리고 나는 민속공연이 한창 펼쳐지는 호텔 바깥 카페에 자리를 잡고 맥주와 안주를 시켰다. 트레킹으로 지친 몸이었지만, 이국땅에서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우연히 맞이하게 된 드문 기회를 그대로 날려버리면 왠지 억울할 것 같았다. 우리가 언제 또 거리의 축제가 벌어지는 이곳 포카라를 방문할 수 있겠는가

남편과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무엇엔가 홀린 듯 노래와 춤과 흥겨운 민속공연이 이뤄지는 무대에 올라 포카라 밤의 축제에 푹 빠져들었다. 한데 어울려 춤을 출 때에는 그들과 내가 하나가 된 기분이었다. 이런 것이 바로 여행자가 누릴 수 있는 여유와 낭만, 그리고 특권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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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카트만두 타멜 제이빌 홈 나트 사장님이 오늘 아침 카톡으로 보내준 사진[호텔 타멜 파크 전경]
네팔 카트만두 타멜 제이빌 홈 나트 사장님이 오늘 아침 카톡으로 보내준 사진 [호텔 타멜 파크 전경]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갔다가 내가 촬영했던 사진
2023년 12월 22일 카트만두 도착 후 호텔 타멜 파크에서 제이빌 홈 나트 사장님과 함께
호텔 로비에서 홈 나트 사장과 싱거만 가이드
12월 31일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 호텔 로비에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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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997147

 

안나푸르나 트레킹 중 만난 고산증, 이게 특효약이었네

[우여곡절 끝에 떠난 안나푸르나 트레킹] 히말라야에서 맞은 크리스마스

www.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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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ABC)
ABC 일출

 

네팔연방민주공화국[The Federal Democratic Republic of Nepal]
 
개관
 
2008년 7월 왕국에서 공화국으로 바뀐 네팔(Nepal)은 히말라야산맥 중앙부의 남쪽에 위치한다. 면적은 14만 7,181㎢, 인구는 3,155만 1,305명(2015년 현재)이며, 수도는 카투만두(Kathmandu)이다.
종족은 아리안족이 80%, 티베트 몽고족이 17%이며, 언어는 네팔어가 공용어이다. 종교는 힌두교가 80.6%, 불교가 10.7%, 기타 4.2% 등이다.
인구의 95%가 농촌에 살고, 노동인구의 90%가 농업에 종사한다. 2014년 현재 국민총생산은 196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은 763달러이다.
네팔은 의원내각제의 공화국으로서, 의회는 단원제(601석)이다. 주요 정당으로는 네팔공산당(CPN-M), 네팔국민회의당(NC), 공산당연합(CPN-UML) 등이 있다.
 
약사
 
네팔은 9세기∼14세기까지 인도의 지배를 받았으며, 1769년 구르카(Gurka) 왕조가 카트만두 계곡을 정복하고 통일왕국을 건설하였다.
1814년 영국에 지배당할 때까지 독립을 유지해 왔다. 1846년 이후 100년 동안은 영국의 지원을 받은 라나가(家)의 독재정치가 실시되었으며, 1951년 2월 18일 왕정이 복고되면서 입헌군주제가 확립되고 독립을 이루었다.
의회는 1960년 12월 국왕에 의하여 해산되었고 촌락의 장로가 중심이 되는 국가 판차야트(Rastriya Panchayat)가 1962년 입법기관으로 설치되었으며 정당은 배제되었다. 1967년 제1차 헌법개정이 이뤄지고, 1972년 1월 비렌드라 국왕이 즉위하였다.
그러나 1979년 각 단계의 가이드라인 아래에서만 활동을 허락하는 판차야트 제도는 국가적인 저항운동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1980년 판차야트 정치체제 존속과 정당정치 부활 중 양자택일을 위한 국민투표가 실시되어, 투표자의 54.8%가 판차야트 존속을 지지함에 따라 제3차 헌법개정이 이뤄졌다.
이후 계속적인 무장 테러에도 불구하고 1986년 4월 선거 결과 국왕에 대한 지지도가 1981년보다 더 높아지자 정치집단들은 지하활동을 시작하여 결국 ‘네팔연합 마르크스 좌익주의자’라는 공산당의 형태로 나타났다.
지속적인 국내의 반대와 시위대에 대한 네팔 당국의 과잉 진압은 국제 사회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비렌드라 국왕은 1990년 4월 6일 범민주주의 운동에 굴복하여 헌법개정위원회 발족 동의, 복수정당제 부활 약속 등 핀차야트 제도는 결국 여러 분야의 압력으로 붕괴되었다.
1990년 11월 9일 비렌드라 국왕은 주권재민, 서구형 입헌군주제, 기본적인 인권 보장, 다당제 민주주의를 공포하였다. 1991년 5월 2일 정당 참가에 의한 32년 만의 총선거에서 네팔의회당(NC)이 과반수를 획득하였으며, 네팔공산당(CPN-UML)이 두 번째로 많은 의석을 차지하여 행정부를 견제하는 제1야당이 되었다.
NC의 사무총장 코이랄라가 수상으로 임명되었으며, 선거 후 60명의 의회 의원은 새 헌법에 따라 국왕이 임명한 10명과 함께 하원을 구성하였다. 아울러 지방선거를 실시하여 민주주의 안정화를 꾀하였으며, 인도를 비롯한 이웃국가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 하였다.
1994년 7월 의회에서 NC 내 반(反) 카이라라파 의원 불참으로 차기 회계연도 정부사업 계획이 부결되자 코이랄라 수상은 의회 해산 및 수상직 사임을 국왕에게 건의하였고 국왕이 이를 수락함으로써 의회 해산 및 조기 총선 실시가 결정되었다.
총선 결과 제1야당이던 네팔공산당이 전체 하원의석 205석 중에서 88석을 차지하여 네팔의회당, 국민당(RPP)을 누르고 승리하여 아디카리 수상의 네팔공산당 소수 단독정부가 출범하였다.
그러나 네팔의회당측은 공산당 정부에 대한 지지 철회 및 국민당과의 연정 구성을 모색하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아디카리 수상은 1995년 6월 9일 비렌드라 국왕에게 국회해산을 건의, 국왕은 국회 해산(6월 13일) 및 조기 총선(11월 23일) 실시를 결정하였다. 선거 결과 국민당의 타파(Surya Bahadur Thapa) 수상의 연립정부가 출범되었다.
한편, 2001년 6월에는 네팔의 왕세자가 국왕 등 왕족 8명을 총으로 사살하고 자살한 사건이 발생하여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후에도 네팔에는 민주화 요구 시위와 총파업이 계속되었고, 뒤이어 즉위한 갸넨트라 국왕은 이에 굴복하여 2002년에 해산된 의회를 복원한다고 발표하였다. 2006년 11월에는 네팔 정부가 반란진영 마오군과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11년간의 내전이 공식 종료되었다.
마침내 2008년 7월 21일 네팔은 왕국에서 대통령이 통치하는 공화국으로 바뀌었고, 국민에 의한 선거를 통하여 람 바란 야다브(Ram Baran Yadav) 대통령이 선출되었으며, 실권자 기리자 프라시드 코이랄라(Girija Prasad Koirala) 총리가 내각을 이끌었다.
네팔은 전통적인 중도중립의 비동맹국가로서 1955년 유엔에, 1961년 비동맹회의에 가입하였다.
 
한국과의 관계
 
우리나라와 네팔은 1969년 7월에 영사협정을 체결하였으며, 1972년 6월 주카트만두 총영사관이 개설되었다. 1974년 5월 15일 공식 외교관계가 수립되었고 총영사관이 대사관으로 승격하였다.
양국은 1971년 5월 무역 협정을 체결한 이래 1988년 2월 항공 협정, 1997년 9월 EDCF기본 협정, 2001년 10월 이중과세방지 협정을 체결하고, 2004년과 2005년에 문화 협정을 체결하였다.
2014년 현재 우리나라의 대 네팔 수출액은 2,003만 달러로 주종목은 전기전자제품과 철강이며, 수입액은 288만 달러로 농산물과 섬유류가 주종목이다. 삼부토건 등 건설회사가 현재 진출해 있으며, 353명의 체류자가 있다.
한편, 북한은 1974년 5월 15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으며, 1978년 12월에는 경제협정을 체결하였다. 이후 1997년 2월에는 문화교류 계획서, 2001년 10월에는 외교부간 협의체 구성약정을 체결하고, 2006년 4월에는 정보통신분야 협력증진을 위한 정보기술 협정을 갱신하였다.[이상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가져옴]
 
참고문헌
 
・ 『세계각국편람』(외교통상부, 2008)
・ 『한국의 창』(동아일보사, 2008)
・ 『해외동포현황』(외교통상부, 2007)
・ 『세계무역통계』(한국무역협회, 2007)
・ 『네팔』(산업연구원 편, 동남아국별편람, 1986)
・ 『동남아정치론』(이우진, 법문사, 1984)
 
히말라야 트레킹을 할 때 명심할 사항[아래 내용은 히말라야 트레킹의 베테랑들이 자신의 트레킹 경험들을 인터넷상의 개인 블로그 등에 게재한 내용들을 참고하여, 이번에 필자 등이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하면서 직접 경험한 내용들을 보완하여 정리한 내용이다. 처음 안나푸르나 등 히말라야를 트레킹하려는 초심자들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먼저 경험하여 정리해준 선배 트레커들에게 감사드린다]
 
1. 트레킹 시작 시각은 오전 7-8시, 마치는 시각은 오후 3-4시로 하는 것이 좋다. 해가 뜨지 않은 시간에 시작하여 해가 남아있는 시간에 마치는 것이 적당하다. (하루 6-8시간 걷기)
 
2. 포터가 메는 카고백(가방)에는 자물쇠를 채우거나 귀중품은 자신의 배낭에 넣는 것이 서로에게 좋다. 물건이 분실되었을 때 서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있다. 포터도 자물쇠 채우기를 바란다.
 
3. 경험이 적은 트레커들은 짐 챙기기가 쉽지 않다. 꼭 필요한 물건을 놓치기보다는 가져가서 빼면 되고, 또 포터들이 짐을 날라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4. 본인이 직접 메는 25-35리터 배낭에는 여행경비, 국내선 항공권(또는 버스표), 트레킹 퍼미션, 트레킹 지도, 카메라, 선글라스, 썬크림, 윈드자켓, 식수, 기호식품, 랜턴, 필기구, 장갑, 모자, 스카프, 비옷(여름), 휴지, 립밤, 상비약 등 중요한 물품을 넣는다. 포터는 다음 목적지까지 짐을 나르는 일을 하는 사람이기에 손님들과 함께 걸으며 필요한 물건을 제공할 의무는 없으며, 무거운 짐을 진 포터가 손님과 보조를 맞춰 걷기를 기대할 수 없다. 꼭 필요한 물건은 아침에 카고백에서 자신의 배낭으로 옮겨 담는 일이 필요하다.
 
5. 트레킹 도중에 만나는 아이들에게 사탕이나 초콜릿을 주는 일은 삼가는 것이 좋다. 산골아이들은 양치질을 잘 하지 않아 충치를 앓을 우려가 있다. 이는 네팔 치과의사협회에서도 관광객들에게 협조를 요청하는 사항이라고 한다.
 
6. 침낭은 트레킹에 필수적인 장비다. 트레커들이 묵는 숙소인 롯지는 전혀 난방이 되지 않으므로, 숙면을 위해서는 침낭은 필수적이다. 우리 일행은 이도정 대장을 제외하고는 침낭을 현지 여행사에서 대여를 했다. 자주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는 별도의 침낭을 준비하는 것도 필요하지 싶다. 위생적으로도 그렇다.
 
7. 장기간 트레킹을 하는 사람이라면 등산용 스틱이 필요하다. 오르막을 올라갈 때나 내리막을 내려갈 때에는 몸의 균형을 유지해주고, 두 다리와 두 개의 스틱으로 힘이 분산되므로 체력소모를 줄여준다. 나는 이번에 스틱 한 세트는 새로 구입하고, 한 세트는 기존에 사용하던 것을 가져갔다. 기능성이 좋은 신형을 새로 구입을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기존에 사용하던 것도 이번 트레킹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또 등산화는 미리 새것으로 구입해 발이 편하도록 트레킹을 떠나기 전 미리 길을 내어놓았다. 발목을 보호할 수 있도록 발목 위까지 오는 것이 좋을 듯하다.
 
8. 트레킹 도중 불탑이나 마니석 등을 지날 때에는 왼쪽으로 돌아가는 것이 올바른 예절이라 한다. 물건을 주고 받을 때에는 항상 오른손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사진을 찍거나 롯지의 부엌에 들어갈 때에는 주인에게 미리 양해를 얻어서 하는 것이 좋다.
 
9. 트레킹할 때에는 현지 지도를 지참하는 것이 편리하다.
 
10. 트레킹을 할 때에는 간단한 슬리퍼를 갖고 가는 것이 편하다. 롯지에서 활동할 때에는 등산화를 벗고 슬리프를 신으면 피로회복에도 도움이 되고, 씻는 데에도 편리하다. 우리는 집에서 신던 간단한 슬리퍼를 준비해 갔다.
 
11. 롯지(lodge)는 히말라야 산속에 있는 산장을 말한다. 이 곳에서 여행자는 숙식을 해결한다. 식사는 네팔식과 서양식으로 나눠지고, 메뉴판의 음식을 주문하면 보통 1시간 정도는 걸린다. 아침은 미리 저녁에 주문을 해두면 일정을 맞추는데 도움이 된다. 식사값은 정가이기에 흥정이 불필요하다. 숙소는 보통 2인 1실이며, 침대에는 베개와 매트리스가 준비되어 있고, 방과 방 사이에는 판자로 벽이 되어 있는 경우도 있어서 코고는 소리까지 들리므로 정숙이 필요하다. 롯지비용은 해발고도에 따라 다를 수 있는데 2인 1실 기준으로 방 1개에 5-10불, 식사는 달밧 기준으로 한 끼당 5-10불 정도로 보면 된다. 롯지는 산속에 있어서 예약이 되지 않는다.
 
12. 롯지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옷을 갈아있는 일이다. 땀에 젖어있으면 열을 빼앗기기 쉽고 감기에 걸리기 쉽다. 롯지에 도착하면 양말, 속옷, 셔츠, 바지 등을 모두 갈아입는다. 트레킹 중 입었던 옷은 롯지 숙소의 옷걸이에 늘어 말린다. 다음날은 전날 입었던 옷으로 다시 갈아입는다. 그렇게 해도 공기가 맑고 고산이라 그런지 냄새도 별로 나지 않는다. 옷을 갈아 입고 침낭을 침대 위에 펼쳐놓고 휴식을 취한다. 그런데 나는 매번 와이파이 연결과 전화기 충전에 신경을 많이 썼다. 사진을 관리하고 블로그를 간단히 정리하는 일이 트레킹이 끝난 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롯지의 고도에 따라 다르지만, 와이파이 연결에 비용이 약 150-300루피, 전화기 충전에 100-200루피였다. 올라갈수록 비싸졌다. 와이파이 연결은 되는데, 사진을 올리거나 할 때에는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또 온도가 내려가니 쉽게 방전이 되고, 충전속도도 무척 느려졌다. 참고로 100루피는 우리돈 1,000원으로 보면 된다.
 
13. 롯지에 도착하면 ‘토마스 버틀’이라는 용기에 담긴 뜨거운 물을 날찐 물통(1리터)에 구입하여(보통 200루피), 침낭 안에 넣고 자면 따뜻하게 지낼 수 있고, 식은 물은 양치질이나 식수로 활용할 수 있다. 물론 핫팩을 충분히 준비하니 별도로 물통을 침낭에 넣을 필요는 없었다. 두어 시간 걸으면 롯지가 나오므로 마실 물은 그렇게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식사를 할 때 당연히 물이 따라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부탁하면 냉수나 온수는 무료로 제공된다.
 
14. 봄, 가을, 겨울철에 해발 2,500미터 이상에 오르면 되도록 롯지에서 샤워하는 것을 삼가라고 한다. 음주도 마찬가지다. 날씨가 춥고 건조하므로 샤워를 하면 체감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져 감기, 몸살에 걸릴 수 있고, 고산병에 걸릴 수도 있다고 한다. 나는 아예 샤워를 하지 않고, 물티슈로 닦기만 했다. 그렇다고 냄새가 나거나 상대방을 거북하게 하거나 할 정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원생자연의 맑은 공기와 깨끗한 환경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음주는 이도정 대장이나 내가 워낙 술을 즐기는 타입이라 그런지, 거의 롯지마다 맥주나 럭시를 간단히 즐겼다. 나는 처녀 트레킹이라 술 마셔도 괜찮냐고 했더니, 이도정 대장은 자기와 함께 마시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해(물론 그렇게 믿어서 마신 것은 아니다), 거의 롯지마다 술을 마셨으나 아무런 문제는 없었다. 아마도 양이 많지 않아 그랬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물며 abc에서도 준비해 간 소주를 박영석 대장 등 추도비 앞에 부어놓고 남은 소주로 둘이서 음복을 했으니 말이다. 많은 이들이 음주는 고산병에 위험하다 하니 마시지 않는 것이 현명한 태도일 것이다.
 
15. 트레킹을 갔을 때 무엇을 먹어야 하나 고민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현지 음식을 즐기려고 하는 편이다. 그러나 현지음식을 먹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이도 많은 것이 현실이기도 한다. 네팔식 기본 음식인 달밧, 삶은 감자, 볶음밥, 토스트, 계란 후라이, 삶은 계란, 오믈렛, 티베티안 브레드, 피자, 핫케익, 마늘스프, 닭백숙 등 다양하다. 나는 처음에는 달밧도 먹을 만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남기는 양이 많아졌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어떤 메뉴이건 음식량이 많았다. 다양한 메뉴들이 있어 자신의 취향에 맞게 주문해서 먹으면 식사로 인한 어려움은 없을 것 같았다.
 
16. 트레킹을 할 때에 한국 라면을 가져가서 끓여 먹을 수도 있다고 한다. 롯지(산장) 주인에게 부탁해서 적정 금액을 지불하고 끓여 달라고 하면 끓여준다고 한다. 롯지 방안 등에서 버너 등을 이용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 준비해 간 밑반찬 등은 자유롭게 꺼내 먹어도 상관없다고 한다. 우리도 한국 소주를 가져가 소주잔을 부탁하니 기꺼이 내어 주었다.
 
17. 롯지에서 똑 같은 음식을 주문해도 음식값이 외국인에 비해 네팔사람의 것이 저렴하다. 보통 음식을 주문하면 가격이 비싼 외국인 것이 먼저 나오고 이후에 가이드, 포터 순서대로 나온다고 한다. 만약 가이드, 포터에게 음식을 사주고 싶을 때에는 그들에게 따로 주문을 하라 하고, 나중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음식값을 그들에게 직접 주는 것이 좋다. 손님이 네팔 사람들 것까지 직접 계산을 하면 모든 음식을 외국인 가격으로 적용하여 영수증을 끊어오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점심 때 롯지에서 포터와 동시에 식사를 한 후 함께 출발하려고 하면 시간이 많이 걸리게 되므로 따로따로 식사를 하는 것이 좋다. 그러니 손님들은 가이드와 1시간 이내의 간단한 점심식사를 한 후에 먼저 출발해야 한다. 갈길은 먼데 점심시간으로 2시간 정도를 허비하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우리 일행도 어떤 일로 점심시간을 2시간 이상 허비한 경우가 있었다. 네팔인 가이드와 포터의 숙소는 다인실로 구성되어 있고, 트레커들의 롯지 숙소보다 많이 열악했다. 꽤 오래 전에 스리랑카(당시 사화주의 국가)에서 가족여행을 할 때 현지인 기사를 데리고 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숙식이 무료로 제공되었다. 내외국인에게는 가격차별을 하고 있었다. 호텔비도 마찬가지였다. 이는 나름 합리적인 정책인 것 같았다.
 
18. 네팔에는 100루피 이하의 잔돈이 귀한 나라라고 한다. 그래서 항상 일정한 양의 잔돈을 소지하는 것이 편리하다고 한다. 롯지에서는 1,000루피, 500루피 지폐를 내도 무리없이 계산이 된다고 한다. 관광지 입장료, 국내선 공항세를 지불할 때도 고액권을 내면 된다. 다만, 택시, 찻집, 작은 상점에서는 잔돈이 필요하다. 네팔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손님으로부터 잔돈을 받으려고 한다.이런 습관은 호텔, 관광지, 롯지, 공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그럴 때에는 단호하게 잔돈이 없다고 해야한다. 본래 물건을 파는 쪽에서 잔돈을 구비해야 하는 것이 장사의 기본원칙이다.
 
19. 히말라야에 오르면 밤이 무척 길다. 내팔사람들은 보통 저녁 8시가 되면 잠자리에 든다. 롯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히말라야 산속은 공기가 너무 맑아 3-4시간 잠을 자도 피로가 쉽게 풀린다. 그래서 잠이 금새 깬다. 어떤 날에는 밤 11시 경에 깨어 다음 날 아침 6시까지 침낭 속에서 기다려야 하는 고역을 경험할 수도 있다. 이때는 독서가 도움이 된다. 트레킹을 떠날 때에는 책을 1-2권 준비하는 것이 좋다. 우리 일행의 다수도 잠을 설쳤다고 했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데 잠을 설쳤다 해도 별 피곤을 느끼지 못했던 이유는 히말라야의 맑은 공기 덕분이었지 싶다.
 
20. 가이드와 포터는 본인이 돈을 주고 부려먹는 사람이 아니고, 히말아야 초행길에 나선 여행객들을 도우는 고마운 이로 생각해야 한다. 그들의 도움에 대한 댓가로  트레커들은 일정액의 비용을 가이드, 포터들에게 지불하는 것이다. 한국의 풍습보다는 네팔의 풍습을 존중해야 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하지 않던가. 가이드는 평소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그들은 위기 시에 절대적인 도움을 주는 이들이다. 가이드는 보험과 같은 존재이다.
 
21. 가이드와 포터에게 받는 것에 익숙하게 해서는 안된다. 한국사람들은 정이 많고 경제적 여유가 있으므로, 무엇이든 댓가없이 주려고 한다. 그렇게 하면 그들에게 자립심을 기르는 기회를 박탈할 수 있고, 또 시장질서를 깰 수도 있다. 트레킹 중 만나는 현지인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늘 중용이 필요한 이유이다.
 
22. 트레킹 출발지점에 도착하면 포터에게 커다란 비닐 커버를 하나 장만해 주는 일이 필요하다. 그들에겐 우비가 되고 우리 짐을 비로부터 젓지 않게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가이드와 포터는 믿을 수 있는 곳으로부터 추천을 받아야 한다. 나중에 오리발을 내밀 수 있어 트레킹 중 기분을 망칠 수도 있다. 즉 여행사를 통해서 고용해야 한다. 그래야 가이드나 포터가 불의의 사고를 당하더라도 사고에 대한 트레커의 책임을 면할 수 있다.
 
23. 히말라야 트레킹은 적어도 3,000미터 이상의 고도는 올라가야 하므로, 최소한 겨울 복장은 따로 챙겨야 한다. 고지대에서는 언제 어떤 악천후로 변할지 예측이 불가능하므로, 트레킹의 기본복장은 가을옷으로 한다 해도 겨울 복장은 기본적으로 준비해 가야 한다. 트레킹 도중에 양말, 속옷, 셔츠 정도는 빨아 입을 수 있고, 덜 마르면 배낭 바깥에 달고 다니면 마른다. 비누는 왠만한 롯지에서는 구할 수 있다고 한다. 만약에 필요한 옷 등의 준비가 부족했을 때에는 고산족 마을에서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에베레스트쪽에는 ‘남체’, 안나푸르나 쪽에는 '촘롱', 그리고 안나푸르나 라운드 쪽에는 ‘마낭’에서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24. 안나푸르나 트레킹 허가증은 미리 받아 두는 게 좋다고 한다. 네팔은 번다(총 파업)가 자주 있고, 축제기간에는 사무실이 업무를 보지 않는다고 한다. 퍼미션을 받지 않고 몰래 샛길로 가게 되면 나중에 발각되면 트레커는 벌금을 물게 되고, 가이드나 포터는 구속될 수도 있다고 한다.
 
25. 고산병을 예방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은 천천히(비스타리) 걷는 것이다. ‘천천히 걷는다’는 의미는 걸을 때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을 정도의 속도를 말한다. 할머니가 손자 손을 잡고 동네 구멍가게에 가는 정도의 속도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해발 3,000미터 이상에서 고산병 증상인 호흡곤란, 두통, 어지러움 증상이 나타나면 복식호흡, 심호흡으로 공기가 최대한 허파 속으로 들어가게 만들어 준다. 고산병은 산소가 부족해 나타나는 현상으로 깊은 호흡을 통하여 폐부 깊숙이 산소가 공급되게 하여야 한다. 이번 트레킹에서 아내는 ABC에서 심한 두통으로 고생했다. 잠도 한숨 자지 못하고 힘들어 했다. 나도 옆에서 잠에 들 수 없었다. 정흥식 원장에게 고산병 약을 얻어서 먹게 하고, 타이레놀을 먹어도 호전되지 않았다. 이도정 대장은 속이 미식거리는지, 토하려는지 등을 물어보고는 참으라고 했다. 한밤 중에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많은 이들이 얘기하듯이 이튿날 하산을 하니까 두통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우리도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가빠졌다. 해발고도가 높다보니 산소부족으로 그런 것 같았다. 정흥식 원장도 앉아서 밤을 지새웠다고 했다.
 
26. 히말라야에는 ‘고산병 함정’이라는 것이 있다고 하는데, 보통 해발 3,000-3,700미터에서 나타나는데, 어느 한 순간부터 갑자기 몸이 가뿐해지거나 힘이 불끈 솟는 자각 증상이 온다고 한다. 이때 초보자들은 본인이 히말라야 고산 체질이라는 착각에 빠져 자칫 걷는 속도를 높이거나 빠른 속도로 고산을 오르게 되면 십중팔구는 고산적응에 실패하게 되고, 고산병에 걸리게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3,000미터 이상을 오를 때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고소적응지역임을 깨닫고 걷는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고산병약이라고 알려진 것도 특효약은 아님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두통, 호흡곤란, 얼굴이 부으면 ‘다이아막스’를 복용하고, 최근에는 비아그라가 고산병을 예방하는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회자되는데, 이 역시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는 아니다.
 
27. 트레킹을 할 때에는 술과 담배는 자제하는 것이 좋다. 필자의 경우에는 수년 전 40년 이상을 피워왔던 담배를 끊었다. 담배를 피웠을 때에는 조금만 걸어도 숨이 가빴고, 산을 오르거나 뛸 때에는 금새 숨이 가빠오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금연을 한 이후에는 뛰어도 숨이 가쁘지 않았다. 이번 트레킹에서도 금연의 효과를 본 것이 아닌가 한다. 음주는 앞에서도 언급한 바이지만, 가능한 한 고산지역에서는 자제하는 것이 고산병 예방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28. 여름철에 안나푸르나를 여행할 때에는 거머리를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산길에서 노새, 당나귀, 말 등을 만났을 때에는 늘 산쪽으로 몸을 피해 동물들이 지나가도록 기다리는 것이 안전하다고 한다. 혹시 동물들이 발길질을 하게 되면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29. 히말라야 트레킹 도중에 다치거나 고산병으로 하산을 하여야 하는 경우에는 구조용 헬기를 불러야 한다. 구조용 헬기도 무료가 아니어서 현금이나 신용카드로 결제를 해야 하기에 비상용 신용카드가 필요하다. 헬기는 한 번 뜨면 5,000달러 정도가 된다. 우리가 트레킹을 하는 중에도 수시로 헬기를 목격할 수 있었다. 환자 이송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ABC 관광을 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ABC에는 헬기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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